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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 약물치료는 완벽해질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손성연 작가>

지평선 저너머 네버엔딩스토리

by 약방노비 2023. 4. 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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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를 소개할 때 미쳤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1)꼭 약물을 복용해야 돼? 그거 부작용도 심하잖아. 중독될 수도 있고. 2)야, ADHD? 나도 그래, 나도 집중 못 해. 3)약점은 말하지 않는 게 좋아. 이 세 가지 말 모두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웃었다. 이런 말들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고 그들에게 설득할 힘이 없었다."





[기고] 미친 존재의 미래를 결정하지 마라! 미친 존재의 삶을 존중해라! <손성연 작가>


나는 정신과 병원에서 ADD(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병원에서 진단명을 받을 때 해방과 억압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감정 상태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사라졌다.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화가 나기 시작했고 갈등과 싸움이 잦아졌다. 의사는 그런 날 보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진단명을 바꿔줬다.

오랫동안 화가 났고 우울했고 지쳤다. 급성기란 용어가 있다. 정신의학에서 급성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 급성기 때 대부분 폐쇄병동에 입원한다. 급성기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고 싶다. ‘미쳤다는 것을 언어로 탐색하고 삶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함.’ 미쳤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의료적 태도는 싸늘하다. 미친 존재의 일상은 모욕으로 가득하다. (중략...)

인터넷에 정신병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정신병자 뜻’ ‘정신병자 대처법’ ‘정신병자 테스트’ ‘지하철 정신병자’ ‘동네 정신병자’ ‘정신병 있는 친구’들이 나온다. 미친존재는 일상생활에서 직간접적으로 모욕을 당한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미쳤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 혐오는 미친존재의 삶을 망가뜨린다. 과거에 나는 나를 혐오했다.

나는 그때 급성기였다. 이 문장을 썼다, 지우길 반복한다. 불쾌한 기억들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단 한 번도 급성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정의한 급성기의 의미라면 나는 그때 급성기였다.

언제나 나를 소개할 때 미쳤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1)꼭 약물을 복용해야 돼? 그거 부작용도 심하잖아. 중독될 수도 있고. 2)야, ADHD? 나도 그래, 나도 집중 못 해. 3)약점은 말하지 않는 게 좋아. 이 세 가지 말 모두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웃었다. 이런 말들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고 그들에게 설득할 힘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나의 고통은 설득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듣기 편했던 말은 ‘그럴 것 같았어’다. 언제나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독특하다”, “특이하다”란 말이 내 질병의 다른 호칭이었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솔직하다.’ 이게 나에겐 자해였다. 자해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실수할 때마다 ‘정신병자’라고 자조했다. ‘나는 결함이 있어, 당신들이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딱 맞아.’ 미쳤다는 걸 숨기는 것보다 솔직한 게 덜 아프다. 사실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아프다. 차라리 말하고 고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약물을 복용하면서 습관화된 ‘잘못된 행동’을 개선해야 된다고 했다. 나의 결함을 열심히 찾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나’에 대한 자료수집 연구가 되었다. ‘나’의 증상은 정말 광범위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 보며 사람들은 “자의식 과잉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의식 과잉이라고 확신했다. 제일 먼저 날 의심했고, 날 믿지 않았다. 어떤 상황을 경험하고 나서 기분이 나쁜 게 맞는지, 기분이 좋아야 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 사람이 화를 내면 나도 화가 났다. 이런 얘기를 의사에게 하면, 의사는 자아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나는 자아가 없어.”

자주 하던 농담이었다, 아무도 웃진 않았지만.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 관찰력이 뛰어나고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존재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가스라이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관계가 반복되면서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안으로도 들어갈 수가 없고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았다. 정말 갇혔구나.

“정신병원 가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관계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겼다.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매번 내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나를 고쳐주려고 했다. 나의 일상생활까지 쳐들어왔다.

어느 날은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밥을 먹지도 못하고 전화를 했다. 통화가 끝나자 엄마가 말했다. “누군데 널 그렇게 혼내?”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내가 혼나고 있는지는 인식하지 못했다. 내 삶의 주도성을 잃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모르겠고 내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몰랐다. 불안하고 화가 났다. 나는 치열하게 싸웠다.

“화가 난다, 화가 많이 난다, 화가 나 미치겠다!”

사람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다시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다. 현재의 나는 변했는데, 모두 과거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현재의 ‘나’는 언제나 구석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개인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관계는 누구나 어렵고 관계는 누구나 실패한다. 나는 이것을 변명하고자 적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두렵다. 나의 급성기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날 위험하다고 생각할까 봐,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불안하다. 나는 통제되어야 한다. 나 때문에 모든 관계가 망가진다. “그렇지 않아.”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미친 내가 위험한 것 같다. (중략...)




나에게 저항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동료를 만나는 것이다. 동료를 만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정체성을 찾아 줄 수 없다. 그 누구도 정체성을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모호한 정체성이 부딪히며 명료한 순간을 발견해 낼 수는 있다. 미쳤다는 것은 누구도 경계 지을 수 없고 정의내릴 수 없다.

난 변했다. 아니, 변한 나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아침에 약물을 복용하고 잘 때도 약물을 복용한다. 약물은 내 몸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정서적, 신체적 변화가 발생되고 나의 사회생활에 영향을 준다. 약물을 복용한 ‘나’는 삶의 시간을 변화시킨다. 사회적 시간과 나의 시간이 불화한다. 사회적 시간에서 요구하는 ‘청춘’은 내게 ‘고통’으로 치환됐다. 사회적 시간에 맞춰 나갈 수가 없다. 남들은 쉽게 가는데, 남들처럼 쉽게 못 간다.

미쳤다는 걸 수용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나만의 시간 활용방법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삶이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은 예측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외면한다. 그러나 나는 정면으로 마주봤다. 갑자기 우울해져, 집 밖에 나가는 게 힘들어졌다가 어느 날은 또 밀려있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한다.

관계에서 실수를 할 때 내 성격 때문인지, 내 질병 때문인지 매일 고민한다. 어느 날은 약속을 잘 지키다가 어느 날은 약속을 못 지킨다. 감정의 상태를 착각할 때도 많다. 삶을 존중해줬으면 한다.

“미친존재의 미래를 결정하지 마라, 미친존재의 삶을 존중해라”




"고통을 나눈다는 건 고통스러운 환자의 상황을 의사가 해결해줘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신과의 약물치료는 완벽해질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전략)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우연히 수업 중 프로이트가 구강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목에 있는 이 구슬은 암이구나, 내과에 갔다. 의사는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다. 의사의 진단을 의심했다. 약을 복용하니 또 한동안 괜찮아졌다. 불쑥 또 엄청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 같아 불안했다.

이번엔 이비인후과에 갔다. 똑같이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다. 똑같은 약이고 모양과 색깔만 달랐다. 이번에는 어금니가 아팠다. ‘오진이었구나!’, 난 역시 구강암에 걸린 거야, 치과에 갔다. 의사가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다.

“아닌데요? 어금니가 아픈데요”

화를 냈다. 의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다. 하루에 병원을 세 군데를 간 적도 있었다. 병원을 자주 옮겨 다녔다. 질병이 귀신처럼 걸어왔다. 밤이고 낮이고 매일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걸 믿지 않았다.

“사회공포증이네요, 범불안장애요.”

의사는 나의 공포를 정의해줬다. 불안장애와 관련된 약물을 복용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공포와 걱정은 줄어들었다. 삶이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부정할 수가 없다. 다만 근원적으로 내가 느끼고 있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공포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내 삶에 나타날 뿐이다. 주위 동료가 아프면, 그 동료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병원을 가라고 신경질을 낸다. 동료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 같아 두려울 때가 많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동료들이 죽진 않았을까? 두려울 때가 있다. 여전히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후 집에 들어오면, 내가 했던 말이 혐오스러운 것 같다.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지 않으면, 내가 잘못한 것 같다.

그럼 생각한다, ‘이건 비합리적인 사고야, 미쳐서 그래.’ 잠시 동안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 또 죽을 듯이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려 안절부절 못한다. 약을 복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복잡하다.

사회공포증이 한창 심했을 때 필요시 약을 처방받았다. 불안감과 우울감이 느껴지면 바로 필요시약을 복용했다. 그렇게 괜찮아지는 건 줄 알았다.

자살한다는 말을 쉽게 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으면 옥상으로 올라가 자살해야지 생각한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자동차가 지나는 걸 보면 뛰어들고 싶다. 죽고 싶다는 말을 오랫동안 해왔다. 감정에 휩쓸려 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자살할 시기를 정하기도 했다.

힘들어서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자살사고라고 말했다. 약물 부작용이라면서 약을 그렇게 복용하면 안 된다며 날 혼냈다. 마치 나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의사는 처방해주기 전에 약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필요시약을 처방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조차 벤조디아제핀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비판정신의학>이란 책을 읽고 복용한 약물에 대해서 알게 됐다. 약물로 인해 자살을 사고할 수 있다는 것, 섬뜩하다. 이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인 마쓰모토 도시히코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에서 말한다. 벤조계 의존증은 ‘손이 가지 않는 환자’들에게 게릴라처럼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마쓰모토 도시히코(2022),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 인간은 왜 취하고 상처 내고 고립되는가』, 김영현(번역), 다다서재, 223쪽]

의사는 매일 똑같이 “그래요? 어땠어요?” 물어본다. “괜찮아지고 있어요” 하면 똑같은 약물을 처방해줬다. 정신과 의사가 말한 ‘손이 가지 않는 환자’란 사실상 의사에게 그 어떤 기대감도 없는 상태다. 인간을 통해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정신과 진료실은 약물의 화학적 반응을 체크하는 곳이지, 환자와 고통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

고통을 나눈다, 고통스러운 환자의 상황을 의사가 해결해줘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신과의 약물치료는 완벽해질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더 솔직해져야 한다.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5에서 사회공포증(사회불안장애)을 진단하는 기준 항목을 살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2.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방향(수치스럽거나 당황한 것으로 보임, 다른 사람을 거부하거나 공격하는 것으로 보임)으로 행동하거나 불안증상을 보일까봐 두려워한다. [APA,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5판』, 권준수(대표 번역자), 학지사, 214쪽]

사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나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서 위험하다. 의존은 독립과 양립할 수 없는 단어로 존재하고 있다. 어떤 의존은 ‘정상’이지만 어떤 의존은 ‘비정상’이다.

한국 사회는 취약성을 수용하며, 삶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든 알게 모르게 의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게 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취약성을 드러내고 상호적인 돌봄을 받는 것이며, 돌봄은 특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에 따라 광범위해진다. 돌봄은 다양해야 되고 매뉴얼로 고정될 수 없다.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에게 자주하는 말이 있다. “현실감각이 없네요.”

기존의 현실감각을 전복시켜야 한다. 현실감각의 밑바닥에는 끝없이 성장해야 된다고 명령하는 서사가 무수히 많다. 성장에는 질병과 장애가 없다. 성장에는 공포와 절망이 없다. 성장에는 끝없는 웃음만 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동시대에서 배제되는 존재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

현실감각이란, 왜 질병과 장애를 외면하는지 왜 그들을 돌보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지, 질문하고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의사에게 말하고 싶다. “현실감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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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나눈다는 건 환자의 말을 듣는다는 것"..미친존재가 직접 현실감각을 정의하다 - e마인드

“아, 일상생활이 모험이야.” 희곡을 읽고 농담으로 자주하는 말이다. 희곡에 등장하는 남자는 전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살면서, 게임에 열중한다. 모두가 남자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서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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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승님 페이스북

얼마전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단톡방에 공유한 사진을 보았다.

"내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증거"란 제목으로 시작된 사진은 여러 증상들을 알려준다.

근데 이 증상들은 내 몸이 망가지고 있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질환 증상들에 더 가깝다.

만사가 귀찮아지거나 확 짜증이나거나 자도 자도 피곤한 증상들은 두 가지 감정계 정신질환의 증상을 섞어놓은것이다.

1. 우울증 (depression)
2. 불안장애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함께 진단받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50%가 넘는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약제들도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이 두 질환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에 이 질환들의 증상을 보일 위험이 높아진다.

둘째, 내가 혼자라고 생각될 때 - 충분한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할 때 - 이 두 증상을 나타날 위험이 높아진다.

마지막 공통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두 증상은 유병률이 너무나 높다. 예를 들어 내가 늦게 참여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에 위치한 지역건강센터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자기 보고식 진단을 실시했더니 참여자의 30%에 달하는 사람들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매년 이루어지는 역학연구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미국 인구의 20%가 넘는것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5년에 1회씩 이루어지는 지역사회정신건강 역학조사 역시 비슷한 비율의 한국인들이 평생에 한번정도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는데. 예를 들어 2021년에 한국에서 이루어진 정신역학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총 인구의 25%가 넘는 사람들이 평생에 한번 정도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증상을 겪지만 그 중 12% - 총 인구로 계산하면 약 3%에 불과한 사람들이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 했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당뇨환자들이 약물치료를 받고 났더니 당뇨관리가 상당히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세 감소가 1 표준편차만큼 일어났을 때 당뇨관리는 0.3 표준편차에 가깝게 상승했다. 이건 엄청난 변화이다. 이런 데이터 덕분에 미국에서 당뇨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일차진료에 찾아오는 환자에게 자기보고식 우울증 진단 질문 - 2개에 불과한 - 을 매번 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일차진료의 -내과나 가정의학과 -들이 우울증 약 처방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내가 평생동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을 경험사람들 중에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은 47%에 달한다. 한국보다 거의 4배가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미국 보다 인구대비 자살자 수가 3배에 가깝게 많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보다 자살하는것이 더 힘든 나라이다. 성공한 자살은 상당한 계획과 자살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한국은 너무 밀집된 지역이기에 미국에 비해 평안한 자살을 실행하는데 어려움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여관방을 선택하는 빈도가 높다. 아파트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살시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음이 노출되기도 싶고 동네에 소문이 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피해가 살까봐 자기 집에서 자살한다는것은 거부감이 든다.

미국은 나라가 넓고 자신의 자동차를 이용하기도 편하고 집도 단독주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롭다.

그런데 무엇보다 총기가 허용된 나라인 미국은 자살을 성공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현재 한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살도구는 번게탄이 이상적인 도구이다. 이제는 번게탄 역시 금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보다 자살율이 1/3에 불과하다는것은 기적적인 일이다. 성공적인 자살을 수행할 환경이 좋지 않은 한국이 미국보다 3배가 자살율이 높다는 것은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수가 몇배가 높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런 이유에 가장 핵심이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도록 만드는 스티그마라도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우울증 약만 제때 먹었다면 이런 자살들이 상당히 예방될건데.

최근에 내가 스티그마를 경험했다. 지난 13년동안 고3때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다. 긴장을 했다. 영어로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나혼자 다른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하고 한국적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고민과 매일 싸우면서 살아왔다. 지난 몇년간 한국의 정신장애인 관련 문제를 고민하면서 미국에서 50년전에 출판된 연구들을 읽으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다시 쓰는듯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정년보장심사를 받고 나니 세계적인 수준의 학문성과를 내고 있는 같은 학과 교수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직 내가 적는 영어문장을 읽은 저널 리뷰어들이 영문 에디팅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데 말이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두뇌가 이상해지고 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불안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드카 한잔 없이는 수면에 들지 못하게 하더라. 내가 이라크 전쟁 참전군인들이 집에 돌아온 이후에 연구했던 주제다. 우울증세, 불안증세,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증세가 음주습관과 상관관게가 매우 높게 나왔던 데이터를 논문으로 Military Medicine이란 미 육군이 운영하는 학술저널에 출판했다. 같은 연구에서 참전군인들 중에 실업상태에 있던 사람 - 스트레스 요인 - 들 중에 술을 마시던 사람들에게서 정신질환 증상이 급격이 높아졌다. 와! 이거 중요한 발견이다며 신났던 기억이 난다. 그 데이터에서 봤던 모습이 나에게 관찰되었다.

이런 정신건강증세가 가족들과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운전할 때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메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함을 쳤다. 그 이후 하루종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이 일정하지 않는 박동으로 뛰는것이 느껴졌다. 일분 일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힘들다. 살지 않는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3년동안 했던 연구들과 내가 읽었던 수많은 데이터들을 통해서 이런 증상은 정신의학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정신의학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internalized stigma는 내가 논문으로 적으려고 논문 기획도 해놓은건데. 내가 Link 교수의 논문에서 읽었던 것을 지금 견디고 있다. 정말 이게 어떻게 된거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미국은 988이란 번호가 있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정신건강문제를 겪을 때 걸수 있는 번호이다. 애리조나에는 한국어 상담은 없지만 엘에이나 뉴욕에는 한국어 상담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 시점에 전화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너무 수치스럽더라. 그래서 인터넷으로 갔더니 인터넷 채팅방이 있었다. 몇번이나 고민했다. 인터넷 채팅방을 시작할까 말까. 시작했다가도 다시 창을 닫았다.

채팅방에 들어갔다. 영어로 이야기한다. 상대는 훈련받은 상담가이다. 나는 그런 상담가들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를 수업시간이 가르치는 정신보건 전공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이 상담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이미 알고 있다.

"You are not the only person who would need help. You have many families and friends who care about you and you will cope with the emotion that you will find now. "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여러분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걱정하는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며, 여러분은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기성복과 같은 말이 나올것을 예상할 수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런 기성복과 같은 내용이 채팅방에 적히니깐 눈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진다. 이게 왜이렇지. 이거 kbs 아침 드라마랑 같은거잖아. 이미 수십년동안 kbs 아침드라마의 반복되는 불륜 스토리를 보더라도 흥분하는 주부생활 30년된 분들을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 예상했던 글에 나는 왜 이렇게 흔들지는거지.

그 글을 보자마다 온몸을 부들부들 했던 것이 잦아진다. 기적이더라. 그냥 누군가가 필요했던거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스티그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누군가.

당연히 상담사가 묻는다. 혹시 자살을 생각했냐고. 난 알고 있다. 이 때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한 뒤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경찰관과 소방관이 우리집 밖에 밤 10시에 올거라는것을. 그리고 나는 경찰차에 임의동행을 한 뒤에 23시간 관찰병상에서 하루를 보낸 뒤에 집으로 돌아올것이다. 애리조나주는 그래도 양반이다. 엘에이의 경우는 23시간 관찰병상이 없어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이후에 정신병동 병상이 확보될 때 까지 boarding이란 기다림을 약 20시간정도 하고 정신병동에 입원되고 휴대폰은 뺏기고 약 2박 3일은 입원하게 된다.

대화를 10분정도 한것같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도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집 앞에 있는 의원에 예약을 하고 갔다. Nurse Practitioner를 만났다. 나의 주치의다. 이야기를 했더니 GAD-7이란 자기보고식 불안장애 진단도구를 작성해보란다. 이거 내 연구에서 언제나 사용하고 있다. 총 점수가 10점이 넘으면 임상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메야. 17점이 나오더라.

능력있는 교수, 좋은 아빠 남편, 성실한 교회성도, 자랑스러운 부모님의 아들로 보이기 위해서 했던 여러 노력들 때문에 나의 두뇌는 이미 지쳐버렸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nurse practioner랑 이야기하는데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여기서 울면 안되는데 왜이러나... 여러번 입을 닫았다. 더 말을 했다가는 주치의한테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것 같다.

약을 처방받았다. Buspirone. 술을 먹지 말라고 하더라. 하루에 두번씩 먹어라고. 의원을 떠나는데 그 약을 너무나 먹고 싶었다. 빨리 먹고 싶었다. 그냥 걸어다니는데 힘든 수준이었다. 내 연구에 참여하셨던 환자들이 왜 하루종일 집에서 누워있는다고 하는지 마침내 이해되더라.

이제 약을 복용한지 6주가 넘었다. 그런데 이 약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나를 괴롭혔던 불안이 없어진다. 자주 올라온 분노가 특히 사라진다.  약에 적응되고 나니 일을 할 때 집중도 더 잘된다. 근데 일을 좀 많이 한 날이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약복용 전에는 좀 힘들어도 계속 연구를 할 수 있었는데 약을 복용한 뒤부터 몸이 힘들어질 때면 내 두뇌가 플러그를 뽑아버린다는 것을 느낀다.

총 6개월 동안 이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이 약 덕분에 금주한지 2달이 되어 간다. 근데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내가 마흔이 되어서 겪는 일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그런분들이 있다면 꼭 동네 정신전문의에게 가세요. 하나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구원해주신다면, 아마도 항우울약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생각된다.

그에 더하여... 드디어 나도 정신장애인 연구를 할 자격을 얻은듯하다. 정신약제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나도 이야기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 연구자로서 가장 큰 경험을 지난 몇달동안 얻게 되었다.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함약회 실천운동)" 연대 온라인 서명운동 주소입니다. 참여와 널리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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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참여 및 서명운동]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을 시작합시다!

✅온라인 참여를 위한 오픈카톡방 주소입니다. 누구나 들어오셔서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open.kakao.com/o/g7equucf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함약회 실천운동)"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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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함약회 실천운동)"을 시작합시다! 🙌🏼

2023년 4월 20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장 앞(소공동 롯데호텔 앞 을지로입구역 7번 지상 출구)에서 첫 오프라인 모임 및 거리 캠페인을 가질 예정입니다. 저희는 정신과 약 사용 경험이 있는 당사자와 그들의 조력자들입니다. 함께 잘 쓰면 우리의 마음을 도울 도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할 짐이 될 수도 있는 정신과 약의 '함께하는의사결정'을 통한 현명한 사용을 제안합니다.

정신질환의 진단은 다른 신체질환과는 달리 환자 혹은 정신질환 당사자와 정신과 의사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혈액검사나 영상학적 검사와 같은 객관적인 검사가 부족하다보니 주로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의 판단으로 진단이 이루어지고, 진단의 근거가 된 증상 완화를 위한 약 처방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대화를 통한 정신치료가 이루어지지만 약이 뇌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믿음 아래 약물치료도 거의 항상 병행되게 됩니다. 환자는 정신과 진단과 약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의사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여기에서 인식론적 불공평(epistemic injustice)이 발생합니다[1].

약은 증상을 완화시키고, 마음의 힘듦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상 소거에만 목적을 두면 사용하는 약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질 수 있고, 증상에 대한 마음씀에 머무르면서 오히려 당사자의 삶의 방향성, 가치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명심할 것은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약의 부작용은 몸의 여러 계통들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작용은 삶의 질에 영향을 주고 불편함을 넘어 괴로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부작용은 정신질환의 증상과 혼동될 수도 있어 진료실에서 이를 호소할 때 오히려 정신과 약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있으니까 약을 쓰지 말자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효과와 부작용을 견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험-이득의 저울’을 재어 의사와 환자가 함께 약을 선택해야 합니다. 임상적 이득이 위험성보다 높은 약제를 골라야 합니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습니다. 정신과 교과서에서도 부작용은 '약물치료의 피할수 없는 위험'으로 기술합니다[2]. 부작용을 백과사전 외듯 달달 외울 수는 없지만 환자는 의사로부터 흔한 부작용과 치명적인 부작용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의 언어로 보고되는 약 복용 이후의 효과와 부작용 경험이 다음 처방 방향에 반영이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합니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료를 진행할 때 치료적 관계를 토대로 회복이 촉진됩니다. 담당 의사를 신뢰할 때 우리는 정신과 약을 지속적으로 잘 복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약이 왜 처방되는지, 어떤 효과를 가질지, 어떤 부작용을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궁금하고, 장기 복용 시 부작용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믿는 마음으로 꾸준히 먹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부족합니다. 이에 우리는 '함께하는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을 제안합니다[3].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토대로 도움되는 약을 살피고, 효과와 부작용을 견주어 함께 선택하고, 필요한 기간 동안 함께 선택한 약을 복용하길 바랍니다. 특히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와 졸피뎀과 같은 수면유도제는 의존성, 남용 위험성이 있고 장기 사용 시에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금단증상으로 약을 중단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약 조차도 필요 시에는 설명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런 대화가 이루어질 때 치료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이는 치료 효과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하는의사결정'은 영국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의료모델이고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도 관련된 연구사업을 꾸리고 있습니다.

한편, 자기결정권 발휘가 어려운 취약계층이 염려됩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 환자분들,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지적장애나 발달장애 환자분들의 경우 증상 악화의 이유로 약이 점차 늘어가는 과정을 종종 목격합니다. 가장 중요한 약은 적정 용량으로 사용을 하되 보조적인 약을 덜어간다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나 상호작용이 줄어들 것입니다. 영국에서 2015년부터 시작된 발달장애인의 과도한 정신과 약 처방 줄이기 운동인 STOMP에 따르면,  정신과 약을 너무 오래 복용하거나 너무 많이 복용하거나 혹은 잘못된 근거로 복용을 하게 되면 ‘체중 증가, 피로감, 심각한 신체적 건강 문제’ 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필요한 약의 최소 처방을 요청합니다[4].

진료실에서 단약하면 안 된다는 말들을 듣습니다. 동의합니다. 갑자기 약을 중단하면 금단증상이 생길 수 있고, 기존의 정신질환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충분한 치료를 통해 안정된 상태에서 약의 감량이 가능한 경우라면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치료종결'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항로를 유지하고 착륙하는 것처럼 약을 서서히 높이고, 유지하고, 덜어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저희 스스로 단약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약을 충분히 이용한 후에 덜어가는 과정을 통해 증상 너머의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도록, 삶을 좀 더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시: 2023년 4월 20일(목) 오전 9시(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 당일)

📌장소: 을지로입구역 7번 지상출구 앞(소공동 롯데호텔 앞,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장소)

📌주관: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 (약칭)함약회 실천운동

📌연명단위 모집중(개인, 단체 가능)

📌문의: 장원장(memorylane@hanmail.net)

*서명 마감은 4월 16일(일) 밤12시까지입니다. 마감 이후 함께하실 분들은 메일로 연락주세요.

<참고문헌>
1.샌드라 스타인가드 저, 장창현 역. 비판정신의학 논쟁 그리고 임상적용.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0.
2.Kaplan and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11th edition - 29.1 General Principles of Psychopharmacology
3.Slade M. Implementing shared decision making in routine mental health care. World Psychiatry. 2017;16(2):146-153.
4.Stopping over medication of people with a learning disability, autism or both (STOMP) 웹페이지. https://www.england.nhs.uk

NHS England » Stopping over medication of people with a learning disability, autism or both (STOMP)

Stopping over medication of people with a learning disability, autism or both (STOMP) STOMP stands for stopping over medication of people with a learning disability, autism or both with psychotropic medicines. It is a national project involving many differ

www.england.nhs.uk



🧑‍💻 장창현 선생님 페이스북

과학 문헌에 따르면 벤조디아제핀(국내 시판 제품명: 아티반, 자낙스, 디아제팜, 리보트릴, 브로마제팜, 데파스, 루나팜, 할시온, 센틸, 그란닥신, 리버티 등)은 신경이완제들처럼 덫으로 작용한다. 그 약들은 짧은 시간 동안 불안을 완화시켜서 고통 받고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약들은 신경전달물질 체계를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이에 반응하여 뇌는 보상 적응을 겪으며, 이 변화의 결과 벤조디아제핀을 이용한 사람은 약물 중단 시 재발에 취약해진다. 이 어려움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약물을 무기한 복용하게 될 수 있으며, 이들은 더욱 불안하고 우울해지고 인지기능의 장애를 더 심하게 경험할 수 있다. -번역 중인 <Anatomy of an Epidemic> 중에서-

#어느정신과의사의고백
#정신과의사들너무믿지마세요 #이약들을처방하는다른의사들도요
#어지럼증 #소화불량 #이명 #예민함 에 처방되기도 합니다.
#맞는처방일지생각해보세요
#비판정신의학 #처방종결 #벤조디아제핀 #항불안제 #의존성 #내성 #장기사용부작용
#폭탄투하예정 #무리수 #XanaxDamnit
#힙합정신과의사 #JANG1JANG
#반론환영 #취재문의환영
#내밖의모순을지적하긴쉽다
#어지러운세상내가바꿀수있는것부터



📺 발달장애인의 약물관리 - 서울특별시북부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서울재활병원 (장창현 선생님)

https://youtu.be/ONMGDnqP3AM


발달장애인의 적절한 정신과 약물치료'에 대한 11분짜리 강연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소아정신과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흘러흘러 발달장애 정신과 약물치료 영역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번역한 <비판정신의학>의 내용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효과를 경험하긴 쉽지 않고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높은 발달장애 당사자 분들 진료를 하면서 정신과 약물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배워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살펴보신다면 정신과 약을 사용하시는데 하나의 참고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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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정신과의사 #장원장 #JANG1JANG
#함께하는의사결정
#환자 #가족 #의사 #모두를위해 #모두를 #존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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